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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때 고려아연을 꽤 오랫동안 들고 있었습니다. 좋은 기업을 샀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계좌에 찍힌 마이너스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됐습니다. 2026년 8월 28일 기준 고려아연 주가는 137만5천원, 시가총액은 약 28조7천억원입니다.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뉴스가 연달아 나오는데도 지금 이 가격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이유를 직접 경험한 사람 입장에서 풀어보겠습니다.
좋은 기업인데 왜 물렸을까 — 과거 주가로 보는 교훈
제가 처음 고려아연을 매수했을 때만 해도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국내 최대 비철금속 제련기업이고, 아연·연·금·은을 뽑아내는 온산제련소의 회수율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이었습니다. 배당도 꾸준했고, 원자재 가격만 받쳐주면 실적이 따라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유 기간 동안 주가는 제 기대와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2022년까지는 '트로이카 드라이브'라는 신사업 전략이 부각되면서 전해동박, 이차전지 소재 등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프리미엄으로 붙었습니다. 여기서 전해동박이란 이차전지의 음극 집전체로 쓰이는 얇은 구리 박막을 말하는데, 당시 전기차 붐과 맞물려 시장의 관심이 컸습니다. 하지만 실제 수익화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2023년에는 매출이 오히려 줄면서 신사업 적자 부담이 부각됐습니다.
2024년 9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영풍·MBK 연합이 공개매수를 시작하면서 주가는 기업 실적과 분리된 새로운 변수와 맞닥뜨렸습니다. 여기서 공개매수란 특정 주주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사겠다고 공개 선언하는 방식입니다. 영풍 측의 최초 공개매수가는 66만원이었고, 고려아연 측은 자사주 공개매수가를 89만원까지 올리며 맞불을 놨습니다. 이 경쟁 과정에서 유통주식이 줄고 지분 경쟁 기대가 반영되면서 주가는 제련 기업의 일반적인 밸류에이션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올라갔습니다. 저는 그 덕에 매수가를 회복한 구간에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수익은 거의 없었지만 손실 없이 빠져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했습니다.
실적은 진짜 좋다 — 2026년 상반기 숫자 뜯어보기
솔직히 실적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2026년 상반기 영업이익이 1조3,330억원으로, 2025년 연간 영업이익 1조2,319억원을 이미 반기 만에 넘어섰습니다.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26.8% 증가한 5,871억원이었습니다(출처: 연합뉴스 고려아연 2분기 실적 보도).
실적을 끌어올린 핵심 변수는 금과 은 가격입니다. 고려아연은 이름 때문에 아연 가격만 보는 기업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제련 과정에서 회수하는 귀금속이 이익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은은 온산제련소의 높은 금속 회수율과 결합해 수익성을 크게 높입니다. 여기서 금속 회수율이란 원광석에서 실제로 뽑아낼 수 있는 금속의 비율을 말하는데, 이 수치가 높을수록 같은 원료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흐름을 놓치면 안 됩니다. 1분기 영업이익률이 12.3%였는데, 2분기에는 9.2%로 낮아졌습니다. 절대 이익 자체는 여전히 크지만, 1분기의 이례적인 수익성이 이후에도 계속 유지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려아연의 실적은 금·은·아연·연 가격과 원·달러 환율, 아연 정광 제련수수료인 TC(Treatment Charge), 전력비가 모두 맞물려 움직이기 때문에 단 한 분기 숫자만으로 추세를 단정하면 위험합니다. TC란 광산 업체가 제련소에 원광을 맡길 때 지급하는 수수료인데, 이 수치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제련 본업의 채산성이 나빠집니다.
- 2025년 연간 영업이익: 1조2,319억원 (전년 대비 70.3% 증가)
-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7,461억원 / 영업이익률 12.3%
- 2026년 2분기 영업이익: 5,871억원 / 영업이익률 9.2%
- 2026년 상반기 합계: 1조3,330억원 — 이미 2025년 연간 초과
경영권 분쟁이 만든 프리미엄 — 9월 임시주총이 분기점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고려아연 투자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경영권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주주환원 가능성이 높아지고 지분 경쟁이 유통주식을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쟁이 끝나는 순간 그 프리미엄이 얼마나 빠르게 소멸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현재 52주 최고가는 218만8천원, 최저가는 약 79만8천원입니다. 변동 폭이 이 정도라면 금속 가격이나 실적보다 경영권 관련 이벤트가 주가를 더 크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PER(주가수익비율)은 약 27~32배 수준입니다. PER이란 현재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이 숫자가 높을수록 미래 성장 기대가 주가에 많이 반영됐다는 의미입니다. 전통적인 비철금속 제련기업 기준으로는 부담스러운 수준이고, 경영권 프리미엄과 미국 사업 기대를 감안해도 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출처: 고려아연 공식 투자정보).
2026년 9월 9일 임시주주총회가 단기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과 집중투표에 의한 독립이사 4명 선임이 주요 안건입니다. 여기서 집중투표제란 이사 선임 시 보유 주식 수에 선임 이사 수를 곱한 표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는 방식으로, 소수주주 또는 특정 세력이 이사회 진입을 노릴 때 유리합니다. 시장에서는 독립이사 4석을 양측이 2석씩 나눠 갖고 감사위원 선임 결과가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회사의 자금과 의사결정이 경영권 방어에 지나치게 쏠린다면 일반주주의 이익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위험입니다.
미국 제련소와 호주 BESS — 성장 카드인가, 재무 부담인가
고려아연의 중장기 성장 스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프로젝트 크루서블'입니다. 미국 테네시주에 총사업비 약 74억달러 규모의 통합 제련소를 짓겠다는 계획으로, 아연·연·동·금·은 외에 안티모니·갈륨·게르마늄 등 총 13개 비철금속을 생산 대상으로 합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요인입니다. 2027년 착공, 2029년부터 단계적 상업 생산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74억달러는 고려아연에게도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미국 정부와 현지 투자자가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구조라고 하더라도, 공사비 증가와 가동 지연, 초기 가동률 리스크, 추가 자금조달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부분은 이 사업이 아직 실적이 아닌 '기대'로만 평가받는 단계라는 점입니다. 지금 주가에 얼마나 반영됐는지 정확히 떼어내기도 어렵습니다.
호주 자회사 아크에너지가 추진하는 리치몬드밸리 BESS(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 프로젝트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BESS란 대규모 배터리를 이용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변동성을 완충하고 전력을 저장·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중요성이 커집니다. 2,200MWh 규모의 BESS와 200MW 태양광발전소를 합쳐 총 약 11억 호주달러를 투자하는 사업인데, 장기 에너지 서비스 계약 기반의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초기 투자비가 크고 수익 회수까지 시간이 깁니다. 전력 가격과 차입구조가 예상과 달라질 경우 재무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미국과 호주 두 프로젝트 모두 장기적으로 고려아연의 사업 구조를 바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실적에 기여하지 않는 사업들이 현재 주가에 얼마만큼의 프리미엄으로 붙어 있는지는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고려아연 주가가 실적 대비 비싼 건가요?
A. 현재 PER 약 27~32배, PBR 약 2.5배는 전통적인 비철금속 제련기업으로 평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수준입니다.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경영권 프리미엄과 미국 사업 기대가 이미 가격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어, 실적만으로 저평가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Q. 9월 임시주총 이후 주가가 어떻게 될까요?
A. 감사위원 선임 결과에 따라 단기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영권 분쟁주는 기술적 분석보다 주총 결과, 소송, 지분 변화 같은 이벤트에 훨씬 크게 반응하므로 주총 직전후 단기 매매는 리스크가 큽니다.
Q. 고려아연 적정 주가는 어느 수준인가요?
A. 시나리오에 따라 다릅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축소되고 금속 가격이 조정될 경우 85만~105만원, 현 실적이 유지되고 분쟁이 지속될 경우 115만~150만원, 미국 사업이 순항하고 지분 경쟁이 이어질 경우 170만~210만원 수준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현재 주가 137만5천원은 기준 시나리오의 중상단에 위치합니다.
Q. 고려아연 배당은 계속 받을 수 있나요?
A. 최근 연간 주당배당금은 2만원이고, 현 주가 기준 배당수익률은 약 1.45%입니다. 경영권 분쟁 기간 동안 주주환원 확대 유인이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대규모 미국·호주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배당 여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단순히 배당주로 접근하기는 어렵습니다.
결론
고려아연은 제련 기술과 핵심광물 사업 경쟁력 면에서 분명 강한 기업입니다. 2026년 사상 최대 실적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물려본 경험으로 배운 교훈은 하나입니다. 좋은 기업을 고르는 것과 좋은 가격에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현재 주가에는 사상 최대 실적, 경영권 프리미엄, 미국 핵심광물 사업 기대가 이미 녹아들어 있습니다. 기존 보유자라면 비중이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보유하되 150만원 이상에서는 분할 대응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신규로 접근하려 한다면 9월 임시주총 이후 불확실성이 어느 방향으로 해소되는지 확인하고, 130만원 아래 조정 구간을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사라졌을 때 현재 밸류에이션을 실적만으로 방어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고려아연 투자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