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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관련주면 다 오를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SK하이닉스 HBM 투자 소식이 나올 때마다 제가 들고 있던 코스닥 장비·소재주도 언젠간 차례가 올 거라고 기다렸는데, 실제로는 같은 'HBM 테마'로 묶인 종목끼리도 주가 흐름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알고 보니 HBM만으로는 AI 반도체를 완성할 수 없었고, 지금 진짜 싸움은 첨단 패키징 쪽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HBM만으로는 부족했던 이유
일반적으로 AI 반도체 수혜는 엔비디아 GPU → HBM → 소부장 순으로 순차적으로 퍼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고, 그 믿음을 근거로 포지션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반도체 구조를 들여다보니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GPU, CPU, 입출력 칩, HBM은 각각 따로 만들어진 뒤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연결됩니다. 이때 칩과 칩 사이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어주는 기술이 바로 2.5D·3D 첨단 패키징입니다. 쉽게 말해 성능 좋은 부품을 만드는 것과 그 부품들을 제대로 연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TSV(Through Silicon Via)라는 기술이 등장합니다. TSV란 D램 칩에 수직으로 미세한 구멍을 뚫고 전극으로 연결해 여러 장을 쌓는 방식으로, HBM의 핵심 공정입니다. 문제는 HBM 자체를 완성했다고 끝이 아니라, 완성된 HBM을 GPU 옆에 물리적으로 배치하고 데이터 통로를 넓게 연결해야 비로소 AI 서버에 탑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직접 공부해보고 나서야 깨달은 건데, HBM 투자 발표와 실제 AI 서버 탑재 사이에는 '패키징'이라는 꽤 복잡한 단계가 끼어 있습니다. 이 단계를 건너뛰고 단순히 HBM 수요 증가만 보고 관련주를 사는 건 절반만 본 것이었습니다.
CoWoS 구조와 삼사의 패키징 경쟁
현재 첨단 패키징 시장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기술이 TSMC의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입니다. CoWoS란 로직 반도체와 여러 개의 HBM을 인터포저 위에 나란히 올려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2.5D 패키징 방식입니다. 여기서 인터포저(Interposer)란 GPU와 HBM 사이에서 데이터가 지나다니는 실리콘 기판을 의미하는데, 이 인터포저의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은 HBM을 탑재할 수 있습니다.
TSMC는 2026년 기준으로 레티클 크기의 5.5배에 달하는 CoWoS를 양산 중이며, 2028년에는 약 10개의 연산칩과 20개의 HBM을 통합할 수 있는 14배 크기 제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출처: TSMC 공식 발표). 패키지 하나가 점점 더 넓어지고 복잡해지는 방향입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공급에 그치지 않고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까지 묶는 턴키 전략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6년 2월에는 1c D램과 4나노 로직 베이스다이를 적용한 HBM4 양산 출하를 발표했고, 자사 2.5D 패키징 솔루션은 3.3배 크기 실리콘 인터포저에 최대 8개의 HBM을 통합할 수 있도록 인증됐습니다.
SK하이닉스는 어드밴스드 MR-MUF(Mass Reflow Molded Underfill) 기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MR-MUF란 얇게 가공된 D램을 여러 층 쌓을 때 칩이 휘거나 뒤틀리는 현상을 억제하고 방열 성능을 높이는 봉지재 공정입니다. 적층 수가 늘어날수록 발열과 뒤틀림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메모리 성능만큼 이 공정의 수율이 중요합니다. 2026년 6월 공개한 12단 HBM4E 샘플에도 어드밴스드 MR-MUF가 적용됐습니다(출처: SK하이닉스 공식 뉴스룸).
제 경험상 이 세 회사의 행보를 보면 이제 패키징은 후공정 부서가 조용히 처리하는 마무리 단계가 아니라, 경쟁사와 차별화하는 핵심 전장이 됐다는 게 느껴집니다.
첨단 패키징 핵심 기술 정리
투자자로서 이 분야를 볼 때 제가 신경 쓰는 기술 항목들입니다.
- TSV: D램 수직 연결 공정, 적층 수가 늘수록 공정 난도가 급격히 올라감
- 인터포저: GPU와 HBM을 연결하는 실리콘 중간 기판, 패키지 대형화의 핵심 변수
- MR-MUF: 적층 칩의 뒤틀림과 발열을 잡아주는 봉지재 공정
- 하이브리드 본딩(Hybrid Bonding): 마이크로 범프 없이 구리와 구리를 직접 연결하는 차세대 방식, 양산 수율 확보가 과제
- 열관리 소재: 패키지가 커질수록 발열 제어 난도가 높아져 소재 중요성 증가
수혜주 선별, 이름보다 단계를 봐야 한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CoWoS 관련 장비를 개발했다는 공시가 나오면 주가가 당일 급등하고, 알고 보면 그게 TSMC 공급망에 직접 들어간 게 아니라 국내 고객사 테스트 라인에 납품한 수준인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저는 그 차이를 처음엔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CoWoS는 TSMC의 고유 패키징 기술 이름입니다. 그래서 국내 기업이 'CoWoS 관련 장비 개발 완료'라고 발표해도, 그것이 TSMC 벤더 인증을 통과했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습니다. 고객 인증, 발주, 납품, 매출 인식은 각각 완전히 다른 단계입니다. 제가 직접 여러 종목에서 이 차이를 경험하고 나서야 이걸 제대로 구분하게 됐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처럼 장기적으로 주목받는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이란 기존 마이크로 범프 방식 대신 구리 표면끼리 직접 맞붙이는 연결 방식으로, 연결 간격을 훨씬 좁혀 데이터 전송 효율과 발열 제어에 유리합니다. 다만 공정 난도가 높아 양산 수율 확보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 기술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관련 기업 실적이 바로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제 경우엔 이제 다음 순서로 확인합니다. 실제 고객사와 공동 개발이나 인증이 진행되고 있는지, 장비 또는 소재가 양산 라인에 투입됐는지, 수주가 실제 영업이익으로 연결되고 있는지, 그리고 다음 세대 패키징 방식에서도 해당 제품이 계속 쓰일 수 있는지를 봅니다. 반도체 산업 전체가 성장하는 것과 내가 보유한 종목이 돈을 버는 것은 정말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HBM이랑 첨단 패키징은 뭐가 다른 건가요?
A. HBM은 D램을 TSV 공정으로 수직으로 쌓아 만든 고대역폭 메모리입니다. 첨단 패키징은 이렇게 만들어진 HBM과 GPU 같은 로직 칩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함께 배치하고 연결하는 기술입니다. HBM을 잘 만드는 것과 그걸 제대로 연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공정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Q. CoWoS 관련주라고 하면 다 수혜를 받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CoWoS는 TSMC의 특정 패키징 기술 이름이라, 국내 기업이 관련 장비를 개발했다고 해서 TSMC 공급망에 직접 들어갔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습니다. 개발 협약, 고객 인증, 실제 납품, 매출 인식은 각각 다른 단계이므로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Q. 하이브리드 본딩은 언제쯤 양산에 적용되나요?
A. 하이브리드 본딩은 구리와 구리를 직접 맞붙이는 방식으로 기존 마이크로 범프보다 연결 밀도가 훨씬 높습니다. 다만 공정 난도가 높아 양산 수율 확보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고, 현재는 일부 기업들이 개발 및 인증 단계에 있습니다. 기술 발표 시점과 실제 매출 발생 시점 사이의 간격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Q. 삼성전자 HBM4가 SK하이닉스보다 늦은 이유가 뭔가요?
A. HBM 경쟁은 단순히 D램 성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HBM에 적용하는 로직 베이스다이 파운드리 수율과 패키징 공정 안정화가 과제였습니다. HBM4는 2026년 2월 양산 출하를 발표했고 1c D램과 4나노 로직 베이스다이를 적용했는데, 이처럼 메모리와 파운드리와 패키징이 모두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단일 공정 개선만으로는 진도를 내기 어렵습니다.
결론
AI 반도체 경쟁이 첨단 패키징으로 확대되는 방향은 맞다고 봅니다. 패키지 면적이 계속 커지고 탑재되는 HBM 수가 늘어나면, 인터포저·본딩·검사·열관리 소재 전반의 수요가 함께 증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건 제가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하기 어려운 흐름입니다.
다만 제가 직접 경험한 교훈은, 시장 성장과 내 종목의 실적은 별개라는 것입니다. 'CoWoS 관련', '유리기판 수혜', 'HBM4 소재'라는 표현만 보고 종목을 고르던 시절에 제 성과가 가장 나빴습니다. 이제는 기술의 가능성보다 양산 시점, 수율, 그리고 그게 실제 영업이익으로 바뀌는 시점을 먼저 봅니다. 첨단 패키징은 분명 기회이지만, 이름만 연결된 종목에는 오히려 가장 큰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